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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은행과 통장의 등장

by 하루담는사람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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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최초은행은 어땠는지 알아보자.

우리나라최초은행

1. 은행이 없던 시절, 돈은 어디에 맡겼을까?

지금은 누구나 은행 계좌를 갖고 통장을 쓰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런 금융 시스템이 예전부터 존재했던 건 아니에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은행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돈을 금고에 넣어두거나, 부잣집에 맡기거나, 포목상·쌀가게 등 신용 있는 상인에게 보관하기도 했어요.
또는 고리대(이자 장사)를 하던 전당포나 사채업자에게 돈을 맡기고 수수료를 받는 식이었죠.
즉, 공식적인 금융기관 없이도 신용과 구두계약으로 돈이 오갔던 시대였던 거예요.
하지만 산업화와 함께 이러한 방식은 한계를 드러냈고, 근대적 은행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해졌어요.
 
 


 

 

2.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 어디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은행은 바로 ‘한성은행’이에요.
1897년 고종 황제의 명으로 설립된 이 은행은 정부가 자본을 댄 최초의 민족은행으로 평가돼요.
당시 외국 자본의 침투를 견제하고, 국내 자본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는 의도로 설립되었죠.
한성은행은 나중에 대한천일은행 → 조선상업은행 → 한국상업은행으로 이름이 바뀌며 명맥을 이어갔고, 현재는 우리은행의 뿌리가 되기도 했어요.
한편 조선은행(1909)은 일본이 자본을 투입해 세운 중앙은행 격의 존재였지만, 이는 식민통치 목적의 금융기관이었기 때문에, '우리 은행'이라는 개념과는 조금 달라요.
즉, 진짜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은행’은 한성은행이라고 할 수 있어요.
 
 


 

 

3. 통장의 시작은 ‘예금 증서’에서부터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쓰는 통장(예금 통장)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초기에는 지금처럼 종이로 인쇄된 예금통장이 아니라, 예금한 금액과 이율, 날짜 등을 적어주는 ‘예금 증서’ 형식이었어요.
은행 직원이 손글씨로 적거나 도장을 찍어주었고, 예금을 찾아갈 때는 이 증서를 꼭 지참해야 했죠.
1900년대 초반에는 예금을 하더라도 대부분은 부유층이나 상인 중심이었고, 일반 백성들이 은행에 접근하는 일은 드물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일본 식민지 시기와 해방 후 정부의 금융 정책 확대로 인해, 일반 국민도 점차 은행을 이용하게 되었고,
1960~70년대 이후에는 농협·국민은행·주택은행 등에서 개인 예금통장을 본격적으로 발급하면서 지금과 유사한 통장 시스템이 정착되었어요.
 
 


 

 

4. 통장은 어떻게 일상의 필수품이 되었을까?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월급을 은행으로 입금받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통장은 그야말로 ‘국민 필수품’이 되었어요.
회사원들은 급여를 통장으로 받고, 공과금이나 전화요금도 은행을 통해 납부했죠.
이후 1980~90년대엔 ‘저축 장려 캠페인’과 함께, 학생들도 저축 통장을 갖는 일이 많아졌고, ‘적금 붐’이 일기도 했어요.
2000년대 들어 인터넷 뱅킹과 모바일 금융이 확산되면서, 통장은 종이에서 앱 속 계좌로 변화했지만,
통장이 가지는 의미—“신뢰와 기록의 증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요.
이 작은 종이 한 권(혹은 디지털 화면 한 줄)은 곧, 우리가 금융 생활을 시작한 첫 출발점이자 금융 자립의 상징이었죠.
 
 


맺음말: 종이 한 장에 담긴 금융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과 통장은 단순히 돈을 맡기고 찾는 기능을 넘어서,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삶의 패턴이 담긴 기록이에요.
‘통장 한 권’에는 산업화, 금융 근대화, 그리고 개인의 경제 자립이라는 사회적 흐름이 녹아 있죠.
교과서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이 작은 금융 도구 속엔 우리가 지나온 역사의 흐름과 경제 생활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 흥미롭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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